비밀 이야기

날아 다니던 그때.

띰띰 2007. 11. 29. 12:19
유 튜브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베스트 50골 .....
한 골 한 골이 예술인 이 축구 묘기의 대행진.

모두 다 그런 기억이 있겠지만.
나에게도 날아다니던 그런 때가 있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고나 할까...
100m 달리기를 12초 정도에 끊을... 1200m 오래 달리기 3분 40초 정도 달렸다.

운동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했었다.
어떤 친구들처럼, 유명한 축구 스타 이름을 외우고, 팀을 외우고 하진 않았지만,
매주 아니 매일 점심 시간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그때...

점심먹자 마자 뛰어 나간다.
오늘은 2반 혹은 3반이랑 시합이 있다. 정말 많은 인간들이 축구하고 있는 좁은 운동장이지만.
우리는 우리들만의 게임을 할 수 있을정도로 집중력이 뛰어 났다.

둘째 시간 마치면, 20분이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도시락 까먹는 애들도 많았지만, 뭐 더러는 공부를 하는 애들도 있었고.
하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 4인 족구를 했더랬다.

다닥다닥 붙은 사각형 네개에다 번호를 매겨서, 1,2.3.4. 순위대로 치고 올라오는 게임.
아님 2대 2, 3대 3 족구.
복도에서 하던 실내화 축구....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지면, 실내화 4쪽으로 2개의 축구골대를 만들고
미니 축구를 했더랬다.

고등학교 1학년 체육시간은 3학년이랑 함께 하는 시간이였다.
3학년의 제의로 음료수 내기를 많이 했던 그 시절.
항상 우리가 이겼다.  (나 땜에?? ㅋㅋ)
그러다가 너무 잘해서 선배한테 불려가 빰도 얻어맞아봤다.

어떤 미친날에는.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면 10시 20분.
자전거로 통학하던 나는 시간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자취하던 애들이랑 , 정말 땀을 비오듯 흘리며,
컴컴한 운동장에 가로등 2개,3개 켜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었다.

주말에는 어떻고.
항공모함 중의 으뜸인, aegis.
우리 조기 축구회 팀의 이름이였다.
(재수란 친구가 만들었는데, 이름이 이!!지써.. 하는 바람에. 우리는 이!!기써..,, g 발음 때문에.. 부르기도했었다 .ㅋㅋ)
나는 주장겸 감독 비스무리 같은것 까지도 했다.
수업시간에 친구들 이름 적어 가며, 포매이션 짜고 전술짜던것이 나의 즐거움이였다.

일욜마다 있던, 숙호산 호랑이이라는 택시기사 아저씨 조기 축구회와 함께 게임하던 생각이 난다.
아저씨들은 전부 축구화에 유니폼에, 전강이 보호대까지 차고 우리 다리를 까 댔지만
우리가 졌던 기억은 별로 없다.

우리 팀은 나를 잘 따라줬었다.
여름에 우리 집 동네로 엠티도 가고, 축구도 정말 많이 하고,
비가 오나 무쟈게 더우나 우리는 축구 그 자체를 즐겼다.

골키퍼 하던 용준이, 수비하던, 재수, 영민, 승희, 재우
미드필드 대철이, 영훈이, 종인이,  공격하던 주서먹기 황제 남현이..
이름 문득 기억안나는 친구들 (벌써 10년전 이야기라 ㅡㅡ;)

아직도 힘이 들때면, 그때 하던 축구 시합에서 골을 넣던 장면을 떠올린다.
왼발을 거의 사용못했지만, 기가 막힌 왼발 슛으로, 동훈이가 골키퍼 하던 그 골대
왼쪽 대를 무쟈게 강하게 맞추었던 슛과,
종인이와 대철이가 같이 대쉬하는 순간 뒷쪽 공간으로 대철이한테의 그림같은 패스.

영훈이 다리사이로 울 팀이 뛰어 가는 바로 코 앞으로 이어진 기가막힌 스루패스.
코너킥에서 바나나 킥으로 슛.
골대 앞에서 수비수 5명 전부 제끼며 넣었던 슛.

한없이 많은 그때의 기분들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리고 힘든 삶의 활력도 된다.

대학 1학년때, 선배들과 섞여서 축구를 했는데.
무려 6골이나 나혼자 기록했던 기억도 난다.
1학년 1학기 과대 하던 그때, 게임 후에, 수많은 선배들로부터 대단하다 칭송과
죽을만큼 마신 막걸리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러다가 대학 2학년 때 , 허리를 다쳐, 6개월간 꼼짝도 못하고, 병원신세를 진후에..
축구와 멀어졌다. 가끔 장난으로는 하지만, 격렬하게는 하지 못했고,
축구가 아닌 격투기를 하던 대학교 과간의 축구는 그다지 나에게 흥미도 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점점 테니스라는 종목에 관심을 가지고,
근래들어서는 골프를 치고 있지만....

고등학교때 한창이던 축구하던 이영호를 쉽게 있지 못한다.
골프의 기가막힌 한샷보다, 테니스 포핸드의 기가막힌 드라이브보다
10년전에 내가 기록한 그 멋진 한골이 나에겐 더 위안이 되고, 행복을 준다..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다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로 가고싶다.
그때 그 친구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리고 싶다.
최고의 팀은 아니였지만, 최선의 팀이였던 우리 조기 축구회 친구들은 다들 머하고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언젠간 만나겠지?

참 그립다....